Larry + 한국힙합 + 철학
휴식(休息). 나무에 기대에 쉬는 모습을 형상화 한 사람의 모습을 의미하는 (쉴 휴).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모습, 마음을 확인하는 (마음 식). ‘휴식’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음악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클래식, 발라드, R&B 등의 잔잔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음악 장르를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힙합과 휴식 과연 그 둘 중에 상관관계에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휴식을 할 때에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앨범 안에 있는 잠깐의 휴식. 어느 다른 음악장르에서는 볼 수 없는 힙합만의 독특한 장치 ‘Skit’을 떠올렸다.
Skit의 사전적 의미는 희문(戱文) 짧은 희극 (드물게) 가벼운 풍자[농담]; 빈정댐, 비웃음이다. 힙합앨범에서 곡 사이사이에 skit이라는 ‘곡(?)’이 있다. 앨범 내에서 다음 곡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서 쓰는 경우도 있고, 앨범 내에서 개그적인 요소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앨범의 주제를 말하기 위해서도, 특별한 이유 없이, 앨범의 홍보를 위해서 등등 사용된다. 시간대는 30초에서 3분 정도로 다양하다. Skit의 여러 사례들을 들며 설명하겠다.
아무 이유 없이 사용하는 경우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 한국힙합시장에서 유명한 래퍼다. 대표적인 노래로는 ‘good life', '8:45 Heaven', '난 널 원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등이 있겠다. 그 중에 오늘 소개할 skit은 'Sky is limit'앨범에 속한 Skit이다.
"7시 3분 자동차에 있는 가짜가죽의자가 내 등살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덥다. ...7시 9분. 갑자기 비가 내린다...다시 힘들게 오른팔을 뜯어내어 버튼을 누른다. 징~. 창문이 닫힌다. 덥다."
이 skit을 앨범에 수록한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작사를 할 시점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의 이번 앨범을 듣다보면 마치 더운 여름날의 끈적끈적한 불편을 옮겨놓았다고 할까. 드렁큰 타이거의 노래가 본래 실제로 Drunken한 상태로 지은 것처럼 칙칙하고 우울하지만 이번 앨범만큼은 조모상과 드렁큰 타이거 본인의 척수염으로 인한 우울함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Maslo의 앨범 ‘Mr. KIM’. 여기서 Maslo는 ‘Skit은 꽃이다’라고 정의한다. Skit을 넣을까 말까 넣을까 말까 하는 멤버들간의 실랑이 그 자체를 Skit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Skit의 본래 뜻인 짧은 해학적인 이야기에 가장 적절한 예라 할 수도 있겠다.
래퍼의 다짐을 보여주는 경우
P-type. 그다지 대중에게 유명하지 않은 힙합가수다. 중저음에 거친 목소리가 매력적인래퍼로 그만의 독특한 라임이 있다. 14곡으로 구성된 ‘Heavy Base’앨범에서 ‘보여주고 증명하라’ 라는 Skit을 보자. 마이크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한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을 기다려왔다고 생각한다. 난 이미 예전에 이 작업들을 계획했고, 다소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이제 세상 앞에 그 결과물을 내놓으려 한다. 내가 믿었던 방식, 근거가 확실한 실력, 힙합다운 힙합. 이것들을 증명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이제 끝났다. 당신들이 내게 반응할 차례이다.”
대부분의 힙합가수라면 위와 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철학적인 생각들, 개인적인 이야기들, 재미있었던 추억들 등등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은 무언가. P-type은 그 면에 있어서 여느 힙합가수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음 곡을 자연스레 연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
공명정대(a.k.a DJEE) TATA컴퍼니 소속의 그. ‘Welcome to TATA CLAN’ 앨범의 ‘Skit on Radio(최정윤)’은 3분여동안 탤런트 최정윤이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공명정대의 사연을 읽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대강의 내용이다.
"2년이 지났습니다. 그녀가 저를 떠나간 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저는 동네에서도 노는 것으로 소문난 꽤 유명한 놈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그녀는 너무 착하고 순진한 친구였는데...그녀가 대학을 졸업하는 날이었어요. 우리가 헤어지던 날이...다시는 연락하지 말자고 너 같은 여자 같이 다니는 것이 창피하다고...하지만...그녀도 이제 결혼을 해야할 텐데 나보다 능력 있고 미래가 보장된 남자가 있을 텐데...그렇게 보내야만 했습니다...도망치듯 비겁한 상처를 주었습니다...그녀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곡이 끝나고 ‘그 이유가’라는 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곡 ‘그 이유가’를 듣고 있으면 헤어진 옛 연인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으로 가사를 지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Dynamic Duo의 ‘Taxi Driver’라는 앨범에서도 위와 같은 성격의 짧은 Skit이 있다. 다음 곡 ‘사랑하면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 대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해줄 뿐만 아니라 그 곡의 분위기를 한껏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또한 나중에 앨범을 들을 때에도 뒤의 곡만 들을 경우 앞부분의 내레이션 부분이 끊기게 들려 어색하게 된다.(궁금하신 분은 한 번 시험해 보시길) 개인적으로 mp3로다운 받아 듣는 사람들이 skit을 듣지 않고 음악을 들어 앞부분이 무얼까 궁금증을 일으키게 하는 의도적인 장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 그리고 그와의 친분을 알리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
배치기의 앨범 마이동풍에서는 라디오 인터뷰형식으로 신인으로서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려는 수단으로도 사용했다. 최근 근황, 2집에 대한 포부와 각오를 열심히 알린다.
자신의 친분을 소개하는 경우에도 Skit을 사용한다. 공명정대의 앨범에는 ‘최정윤’과 ‘박다래’가 참여했으며, 은지원의 경우에는 ‘Drunken Tiger’, ‘Bobby Kim’, 그리고 ‘Dynamic Duo’가 등장하기도 한다.
개그적인 요소로 사용하는 경우
Double K의 ‘Positive mind’라는 앨범에서 ‘따블이에게’라는 곡은 참 선정적이게 재미있다. 한국에 와서 좁은 녹음실에서 작업 중인 Double K를 굉장히 걱정하는 듯 한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걱정하는 태도로 일관하다가 “요즘 스트레스를 어떤 방식으로 푸니?...술 담배 이런거 몸에 안 좋아...남자는 뭐니 뭐니해도 X 아니겠니? 미국에 있는 글래머보단 한국에 있는 얘들 좋은 얘들 많다.” 하면서 성관계에 대해서 참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번설명하는 것보단 한 번 들어보시길.
Mr.Typoon의 '한글리쉬'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얼핏 들으면 영어같이 들리지만 자세히 따지고 들어보면 모두 한국어이다. 한동안 이 Skit이 인터넷에서 이슈였다. CF까지 찍었으니 파장효과가 얼마였는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들어보지 못한 독자는 검색해서 들어보면 그의 창의적인 사고에 감탄할 것이다.
힙합안의 휴식 Skit이 여러가지 의미가 있듯, 우리 인생의 쉼도 잠시 쉬어가는 것 그 자체가 무언가를 얻어갈 의미가 있지않을까 생각한다.
-LArry-